발음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든 못 하는 사람이든 신경을 안 쓰자니 아쉽고, 신경을 쓰자니 골치아픈 주제이다.
대체 어디까지 연마해야 좋은 발음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호할 뿐더러 요즘은 '반기문식 영어'에 힘입어 발음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대세 아닌 대세'(사실은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무척이나 영어 발음에 신경을 쓰므로)로 인해 속으로는 아쉽지만 겉으로는 발음 문제에 대해 쿨한 척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발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애써 쿨한 척 한다고 해봤자 컴플렉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컴플렉스를 해결하려면 우선 내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컴플렉스가 생겼는지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발음이 좋다, 발음이 나쁘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한 가지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accent이고 다른 하나는 pronunciation이다.
누군가의 발음을 두고 "쟤 발음은 완전 원어민이야"라고 말할 때의 발음은 일반적으로 accent를 가리킨다.
반면 흔히 학생들을 지적하며 "넌 p발음하고 f발음이 잘 구분이 안 되네"라고 말할 때의 발음은 pronunciation을 가리킨다.
나는 사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영어 연설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 분의 영어 발음을 흔히 나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영어가 글로벌한 환경에서 먹혀들어가는 것은 accent가 예쁘지 않아도 pronunciation이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발음 문제를 해결하려면 accent와 pronunciation 차원에서 교정에 들어가야 하는데 굳이 순서가 있다면 pronunciation을 먼저 점검하고 교정한 후에 accent에 신경쓰는 것이 좋다.
반기문 총장의 발음을 어림잡아 평가하면서 accent에 대해서는 '예쁘다'는 기준으로 평가했고, pronunciation에 대해서는 '정확하다'는 기준으로 평가했다.
정확한 것과 예쁜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중요할까?
만약에 춤을 배우는 사람이 정확한 스텝은 배우지 않고 무대 위의 무용수처럼 예쁘게만 추려고 한다면?
어떤 피아노 곡을 연습하는 학생이 곡의 정확한 타건을 배우지 않고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예쁜 연주의 흐름만 좇으려고 한다면?
춤과 노래는 엉망이 될 것이 뻔하고, 심지어 어떤 춤을 추는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영어 발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accent는 박자 혹은 강도(세기) 정도로 비유될 수 있다.
음악을 들어보면 가수나 악기 연주자들이 한 마디 안에 있는 음표를 똑같은 박자나 강도로 소리 내지 않는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강하게 혹은 길게 소리내기도 하고, 아주 여리게 혹은 짧게 소리내기도 한다.
한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소리를 한 마디 안에 들어 있는 음표라고 생각해본다면 마찬가지로 단어를 구성하는 각개 소리도 서로 다른 박자와 강도를 갖게 될 것이다.
strike라는 단어를 /스.트.라.이.크/라고 읽거나 want라는 단어를 /원.트/라고 읽는 것은 단어를 구성하는 각 소리를 모두 일정한 박자와 강도를 읽어서 그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조금 더 나아가서 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을 한 마디 안에 들어 있는 음표라고 생각해본다면 역시 각 단어들도 서로 다른 박자와 강도로 표현될 것이다.
원어민들이 "What do you want to be?"를 /왓.두.유.원.투.비/라고 읽지 않고 /와라유.워너.비/와 같이 읽는 것도 그런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accent가 흐름을 만드는 요소라면 pronunciation은 한 음 한 음 그 자체이다.
'도(C)'를 연주하고자 하면 반드시 '도(C)'의 음이 나야한다는 것이 pronunciation의 원칙이다.
도(C)라는 음을 내려면 피아노라면 어느 건반을 쳐야할지, 바이올린이라면 어느 현의 어떤 부분을 눌러야할지를 알아야하듯이 영어에서도 각 소리(a,b,c,d...)를 내기 위한 발음기관의 움직임을 익혀야 한다.
예를 들면 /p/는 양 입술을 붙였다가 떼면서 터지는 소리로 우리말의 /ㅍ/ 발음과 유사하다.
반면 /f/는 윗니를 아랫입술에 붙인 채로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며 내는 소리이다. (따라서 입술이 공기와의 마찰로 떨림이 느껴진다)
이처럼 개별 소리에 대한 소리내는 법을 정확히 익혀야만 좋은 pronunciation이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영어 발음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 두 가지 요소 중 어떤 것이 더 크게 작용해서 내 발음이 나쁘게 들리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 만약 그것이 주로 accent 때문이라면 당장 원어민의 accent와 나의 accent를 비교하며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내가 외국어를 배우고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좋다.
반면 pronunciation이 발음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주요인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비교적 단시간 내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내 발음이 어떤 것 때문에 안 좋게 들리는지를 평가해볼 수 있는 자가진단법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만약에 내가 문장 단위로 말하는 데 원어민이 못 알아 들어서 문장을 천천히 또박또박 교과서 읽듯이 말하자 그제서야 이해하거나, 문장 내의 주요 단어를 따로 떼어서 이야기했더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경우 accent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요 단어를 따로 떼어서 반복적으로 말했는데도 역시 거의 대부분의 단어를 못 알아듣는다면(심지어 종이에 쓰거나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을 가리켜야만 알아듣는다면) 그건 분명 pronunciation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자신은 주로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특정 단어를 따로 떼어내어 발음했는데도 원어민이 갸우뚱하더니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읽으면서 이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내가 그 해당 단어에 대해 잘못된 accent로 발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camera를 /카메라/라고 읽었는데 원어민이 갸우뚱하더니 /캐므라/라고 되묻는 경우)
어떤 문제든 원인을 정확히 할 때 좋은 해결법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또 그 좋은 해결법을 몸으로 익히고 실천할 때만 문제가 축소되거나 해결될 수 있다.
영어 발음이 마음에 안 든다면 무조건 쿨한 척 할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2011/07/09 20:01
- gijungish.egloos.com/280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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